찬 밤에 밝디 밝은 구름 속 저 달을 보며

페이지 정보

작성자 더불어숲 (116.♡.161.207) 작성일08-01-18 03:02 조회2,382회 댓글0건

본문

밤이 깊습니다. 모처럼 겨울다운 날씨를 보이고 있어 은근히 겨울밤이 무척 기대됩니다. 그래 슬며시 밖으로 나가 밤하늘을 보았습니다. 서쪽 하늘 구름 사이로 둥근 달이 제 모습을 조금씩 드러냅니다. 너무나 밝아 마치 해가 구름 사이로 고개를 내미는 듯합니다. 본디 추운 날씨일수록 달은 청명하기 그지없는 법입니다. 모처럼 차가운 삭풍이 불어오니 달도 차갑게만 느껴집니다. 그러나 깨끗한 하늘만큼 달도 밝고, 맑고, 깨끗하기만 합니다. 아, 얼마나 오랜 만에 느껴 보는 이 풍경인가요?

 어릴 적 외가로 놀러갔을 때입니다. 그때만 해도 시골 겨울밤은 얼마나 길고 길던가요? 전기불이 들어오지 않으니 호롱불 밝혀 두고 아랫목에 둥그렇게 모여 앉아 고구마 구워 먹던 생각이 절로 납니다. 애고 어른이고 죄다 손과 얼굴에 시커멓게 고구마 재 묻혀가면서 구들목 이불 아래 모여들어 이야기꽃을 피우던 겨울 말입니다. 소죽도 끓이고 구들방도 데피는 우리 겨레의 뛰어난 연료 절약 정신도 몰랐고, 온돌의 빼어난 과학성도 몰랐지만 그저 사람 사는 재미 하나로 즐거웠던 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러다 누가 도깨비불 이야기라도 할라치면 슬금슬금 고모 옆으로 바짝 다가가던 생각이 아련합니다. 이제 그 고모님은 내일 모레 팔순을 바라보게 되었고, 그 어린 아이는 사십 대 중반을 지나고 있습니다. 아무튼 도깨비불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한지 발린 방문을 덜컥 열면서 ‘도깨비 어디 숨었노?’ 하고 한 마디 하면 그야말로 기겁하고 뒤로 나자빠졌습니다. 그때 들어오는 촌 공기의 시원함, 맑고 깨끗함은 방에 매달려 있던 메주 냄새와 겹쳐지면서 곧 구수함으로 다가오곤 했지요. 그리고 슬며시 산 너머 고개를 내미는 둥근 달을 보고 있으면 절로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꼬요. 그 달에 얼마나 많이 소원을 빌었는지 모릅니다.

 ‘제발 이 세상에 굶어 죽는 사람 없게, 병에 걸려 죽는 사람 없게, 서로 싸우지 않는 세상 되게, 남북이 하나 되는 세상 되게, 온 인류가 더불어 살게 해 달라!’고 수도 없이 빌었습니다. 아마 그 때 사람이면 누구나 다 그랬을 겁니다. 그저 말없이 그 고운 달님을 바라보면서 달님에게 빌었던 게지요. 정말로 아무런 욕심도 없고, 마음에서 우러나온 그 심정, 그 마음 그대로였고요.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그 때만 해도 우리는 남 속일 줄 모르고, 그저 하늘과 땅이 일러준 대로만 살았던 사람들, 참으로 곱디고운 마음을 지닌 백의민족, 단군의 자손 아니었습니까? 바로 그게 우리 배달겨레의 힘이요, 멋이요, 자랑거리 아니겠습니까? 더불어숲은 바로 그런 정신, 그런 힘, 그런 멋과 맛을 이어가려는 지역운동모임입니다. 그래서‘너와 나, 우리의 삶을 가꾸고, 나눠 마침내 세상을 바꾸는!’ 모임이기를 바라는 거지요.

 너무 오랫동안 빠듯하게만 살아온 탓에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쳤습니다. 그래 큰 맘 먹고 혼자만의 여행을 떠납니다. 벌서 나흘 째 전화도 꺼두고, 단식을 겸한 식이요법을 하면서 지냅니다. 비록 몸이야 며칠 푹 자고 쉬고 나면 곧 회복되겠지만 한 번 상처받은 마음은 쉽게 낫지를 않습니다. 그 숨겨두고 싶은 마음이 저 청명한 달님을 보니 더 이상 가슴 속에 묻어두기 힘듭니다. 그래 오늘은 더불어숲 식구들에게 가슴 한 구석에 담아둔 이야기를 좀 하려 합니다.

 돌이켜볼수록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고,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상처를 남겼습니다. 처지에 과분한 대접도 많이 받았고, 건방지게 다른 사람을 무시하기도 많이 했습니다. 아무리 되돌아봐도 겸손함 보다는 무례함이, 선함보다는 악함이 더 많은 삶을 살았나 봅니다. 어릴 적 도덕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에 따르면 사람은 모름지기 ‘된사람, 난사람, 든사람’이 되어야 하고, 그 가운데 된사람이 으뜸이라 배웠습니다. 된사람이란 달리 말하자면 ‘참사람, 사람다운 사람’을 일컫는 거지요. 무엇보다 ‘사람이 먼저고,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이라 봅니다. 그런데 스스로 둘러보건대 된사람도 아니고, 난사람도 아니고, 든사람도 아니니 이 무슨 사람입니까? 막 돼 먹은 사람이고, 막 가는 사람이고, 막 사는 사람이라는 말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습니다. 어쩜 이리도 무능하고, 무지하고, 무기력한지요! 스스로 생각해 봐도 안타깝고 기막혀 혀만 ‘쯧쯧’ 찰뿐입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요?

 좋은 세상 일구어보겠다고 겁 없이 뛰어든 지 이십 년이 지나도록 도무지 뭣 하나 제대로 해 놓은 게 없으니 참으로 세상 보기 부끄럽고, 그 동안 믿고 따라준 수많은 분들을 대할 면목이 없습니다. 옛날 남이 장군은 ‘男兒二十 未平國이면 後世誰稱 大丈夫리요?’라 했거늘 그 이십년 세월을 두 번 넘게 고스란히 갖다 바치고도 뜻을 이루지 못했으니 하늘 아래 몸 숨길 데 없습니다. 그렇다고 김삿갓처럼 삿갓 쓰고 다닐 용기도 없으니 이 어찌 딱한 노릇이 아니겠습니까? 무엇보다 온갖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묵묵히 함께 한 젊은 동지들에게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이제 와서 청춘을 보상해 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금전으로 보상할 처지도 안 되니 딱하기 그지없습니다. 사람이 재산이라고 믿음 하나로 보고 따라온 분들인데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 감출 길 없습니다. 참 여러 사람 괴롭히고 사는 인생입니다. 대체 언제쯤 되어야 이 죄 많은 삶에 종지부를 찍을지 까마득하기만 합니다.

 그래 이 병들고 지친 영혼, 어떻게든 다스려보자고 길을 나섰습니다. 마음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굶주린 만큼 맑은 정신을 지녀야 하는데, 마음공부를 하러 왔으면 그 마음이 안정돼야 하는데 통 그렇지가 못합니다. 여전히 욕심 많고, 어리석은 사람이라 그런지 명상을 하려고 앉으면 온갖 잡념이 그치지 않고, 마음 편히 일기라도 쓸려면 갖가지 상념에 사로잡혀 아무 것도 하지 못합니다. 사실 몸도 추스르고, 마음도 다독이고, 조용히 그 동안 미루어 둔 책 쓰기를 하려 했지만 다 부질없는 짓입니다. 무엇보다 마음이 맑지 않으니 몸도 무겁고, 책 쓰기는 아예 엄두도 내지 못합니다. 그나마 책이라도 내야 젊은 사람들 뭐 어떻게 해 볼 터인데 그조차 뜻대로 되지 않으니 가슴만 아픕니다. 하지만 이 상태라면 글을 쓰지 않는 게 옳습니다. 또 무슨 쓰레기가 나올지 모르는 까닭입니다. 글이란 그 사람의 얼굴이요, 그 사람의 마음거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함부로 글을 썼다간 한량없이 사람들을 잡아먹게 되지요. 아니요, 하긴 지금 같아선 그런 재주라도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재주도 없으니 더 안쓰러운 거지요. 그래서일까 저 달을 보고 있으니 무엇보다 이 시각 꿈속에서도 열심히 뛰고 있을 더불어숲 식구들이며, 굴렁쇠 식구들이 떠올라 너무나 답답해 편히 잠자리에 들 수도 없습니다.

 참말로 대표란 사람이 이렇게 무능할 수가 있을까요? 한두 해 바짝 하면 돈벌이도 쉽게 하고, 다시 더불어숲에 돌아와 열심히 지역운동을 할 수 있으리라 믿었건만... 한 십 년 벌면 대구에 민주화운동자료관도 세우고, 모든 아이와 가난한 식구들을 위해 나라 곳곳에 굴렁쇠 쉼터도 몇 개 지을 수 있다고 믿었건만.... 십년 원을 세우고 돈벌이에 나선지 팔 년째 되도록 원을 이루기는커녕 공연히 빚만 잔뜩 떠안았으니 당최 사람 볼 낯이 없습니다. 이제 겨우 두 해 남짓 남았는데... 정확히 두 해 열한 달 남았네요.... 그런데 무슨 수로 그 원을 세울지 머리가 터져나갈 지경입니다. 적어도 다른 사람에게는 몰라도 스스로 세운 원인데 그조차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면 어찌 더불어숲에서 지역운동 같은 큰 뜻을 세울 수 있을 것이며, 서로 도우며 더불어 사는 사회를 가꿀 수 있을 겁니까? 그래서 더더욱 제 마음의 고향인 더불어숲에 미안한 마음 숨길 수 없고, 제 자신에게 분노의 마음을 감출 수 없습니다. 더불어숲을 일구는 모든 분들에게 그저 죄송한 마음으로 사죄할 뿐입니다!

 물론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해서 여기서 쉽게 물러서진 않을 겁니다. 다시, 다시 새로 시작할 겁니다. 더 이상 무리한 욕심은 내지 않겠습니다. 지금 상태에서 하나씩 하나씩 해 나갈 작정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아무리 바빠도 더불어숲에서 조금이라도 일을 해나가야겠다는 각오입니다. 현실이 돈벌이에 뛰어든 이상 더불어숲에 상근자로 일하기는 어렵겠지만 작은 일부터 하나씩 다시 맡아 하는 게 옳다고 봅니다. 더불어숲은 다른 단체나 모임과 달리 대표가 이름만 걸어두면 그 뜻이 없습니다. 지역 사회와 함께 하는 대표가 되어야 하고, 제대로 대표답게 일한 다음에 스스로 물러나는 대표가 되어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그래 저는 더불어숲과 더불어숲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에게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사죄하려 합니다. 그 동안 대표로서 더불어숲을 나 몰라라 한 것에 대하여 정말로 사과드립니다. 앞으로 더불어숲에서 할 일이 무엇인지 차분히 생각해 보겠습니다. 될 수만 있다면 오는 3월쯤부터 작은 일이라도 하고 싶다는 마음을 지금은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일정이 제대로 될 지는 송구스럽지만 3월이 되어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습니다. 다만, 3월경부터는 꼭 한 가지라도, 작은 일이라도, 능력이 없는 대표니 하다못해 청소 일이라도 제대로 하루 거들 수 있도록 할 겁니다!

 그나마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지난 세월 혼자 속으로 속앓이하며 마음에 두었던 말을 내뱉으니 이제 어느 정도 속은 후련하네요. 좀 더 쉬면서 정신 바짝 차려 대표로서 반듯한 모습과 자세를 보이도록 하겠습니다. 정신 차릴 때까지 끝없이 마구 채찍질을 해 주십시오!

 이제 달은 구름 속으로 숨었는지 보이지 않고 대신 구름 사이로 밝은 별님만 몇 비칩니다. 달님과 별님이 늘 이 세상을 밝게 비추듯 더불어숲도 우리 사회에서 밤하늘에 빛나는 달님과 별님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낮에는 찬란한 해님이, 밤에는 빛나는 달님이 되어도 괜찮겠습니다!

 밤이 깊어 이제 새벽으로 달리고 있습니다. 다들 평안히 주무십시오. 새해 인사도 못 올렸는데 뒤늦게나마 올리겠습니다.

 사랑하는 더불어숲, 더불어숲 식구들, 더불어숲을 아끼는 모든 분들에게 삼가 몸과 마음을 다잡아 인사 올립니다.

 “올해도 내내 건강하시고, 아무쪼록 마음먹은 일 죄다 이루십시오!”


마음 여행터에서 구경래입니다.

추천 320 비추천 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더불어숲 이야기 목록

Total 70건 3 페이지
더불어숲 이야기 목록
40 정월대보름 맞이 지신밟기 인기글첨부파일 더불어숲 02-09 1916 291 0
39 한 해를 보내며, - 후원벗님들께 보낸 엽서. 인기글첨부파일 더불어숲 12-15 1888 289 0
38 다부초등학교 아이들이 다녀갔어요~! 인기글첨부파일 더불어숲 12-08 2653 298 0
37 더불어숲에 겹경사가 생겼어요~! 인기글첨부파일 더불어숲 11-05 2079 284 0
36 개관행사 이야기 인기글첨부파일 더불어숲 10-29 1865 284 0
35 더불어숲 "인형맘" 엄마들~ 인기글첨부파일 더불어숲 10-22 1914 284 0
34 더불어숲에 책을 기부할 수 있는 좋은 방법 인기글 더불어숲 09-17 2255 289 0
33 왜 산을 찾을까? 인기글 더불어숲 06-02 2278 308 0
32 차를 즐겨 보세요! 인기글 더불어숲 04-04 2308 322 0
31 6복! 인기글 더불어숲 03-30 1896 325 0
열람중 찬 밤에 밝디 밝은 구름 속 저 달을 보며 인기글 더불어숲 01-18 2383 320 0
29 도서관을 완전 새단장했어요. 인기글 더불어숲 08-28 2131 317 0
28 도서관 바닥을 새단장했어요. 댓글1 인기글첨부파일 더불어숲 07-10 2143 283 0
27 독서 흥미 발달단계에 따른 책에 대한 관심의 변화 인기글 더불어숲 06-19 2343 315 0
26 그림책은 교육 교재가 아니다! 댓글1 인기글 더불어숲 06-08 2040 283 0
게시물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