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서 만난 할머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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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더불어숲 (218.♡.192.86) 작성일06-02-28 12:19 조회2,58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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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그러니까 지난 24일 금요일 대전 기자단 학부모 간담회를 하러 대전에 갔을 때 일이다. 고속전철을 타고 대전역에 내려 광장으로 막 내려서려는데 할머니 한 분이 한 손에 껌을 여러 통 들고 '껌 사세요.' 한다. 워낙 갑자기 당한 일이라 무척 당황한 나머지 그냥 모른 척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냥 가려다 망설임 끝에 다시 되돌아서 그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할머니는 여전히 여러 사람들에게 껌을 팔려고 손을 내밀지만 사람들은 누구라 할 것 없이 죄다 무시하고 지나쳤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1980년대 후반, 내가 일했던 야학에서의 일이다.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의 늙은 야간중학생들을 앉혀놓고 길게 한 마디를 했다.

"니네들, 길이나 식당에서 아나 할매가 껌을 팔면 사주지 마래이!"
"왜요?"
"방송에서 카던데 우리가 불쌍하다고 팔아줘봤자 그 돈 다 그 사람들이 하는 거 아니라 안 카나. 다 뒤에 있는 두목이 싹 빼앗아가버리고 아주 쬐끔만 준다 안 카나. 그러이 앞으로 그런 거 사지 마래이. 또, 너거들 그거 살 돈도 잘 없잖아? 그러이 사지 마래이!"

그 날 밤 수업이 끝나고 다들 집으로 가려는데 이십대 남자학생 하나가 내게 슬며시 와서 이런다.

"저어, 구강학요, 오늘 밤에 마이 바쁜교?"
"와?"
"안 바쁘면 한 잔 하이시더. 제가 한 잔 살께예."
"그래라, 마."

그래 한 잔 마시는데 은근히 걱정이 된다. 야학학생들이 먼저 교사에게 술 한 잔 마시자며 말을 건네오기란 그 때만 해도 그리 쉽지 않은 분위기였던 터라 속으로 '이거, 뭔가 또 큰 일이 생겼구나. 야학을 못 다닌다는 말이가, 아니면 공장에서 무슨 일 터졌나?' 하며 조바심치며 술집으로 갔다. 그 때는 돈이 워낙 궁했던 터라 술값은 공장에 다니는 학생이 낼 때가 더 많았다.

"구강학요!"
"야, 밖에선 그냥 형이라 해라 안 카나?"
"알았구마. 헹님요, 헹님은 지가 일요일에 어디 가는지 안다 아잉교!"

그 학생은 돈벌이가 우리 야학에서 가장 나은 친구였다. 국민학교도 제대로 못 다닌 덕에 어려서부터 죽어라 공장에서 일하다 어떻게 미싱일을 하게 되고 재단기능사 기술을 익혀 그나마 돈을 좀 벌었던 친구다. 꼭 전태일 열사처럼! 그런데 그 친구는 그나마 우리 안에서 가장 돈벌이가 좋았다 말이지 진짜로 돈벌이가 좋았던 건 아니다. 워낙 다른 학생들 월급이 적으니까(10만 원이 안 되는 학생이 대부분이었다) 많이 보였을 뿐이지! 아무튼 그 친구는 일요일만 되면 가는 곳이 있었다. 바로 고아원이다. 역시 굶어본 사람이 굶주리는 사람 마음을 안다고 딱 그 짝이다.

"야, 니는 니도 묵고 살기 힘등기 말라꼬 고아원에 가서 그카노. 돈 많은 사람들이 가서 돈 내고 봉사해야쟤!"
"아이다 압니꺼. 그건 헹님이 더 잘 안다 아잉교. 맨날 민중이 어떻고 저떻고 캐싸는 사람이 와 이카는교?"
"야야, 없는 민중끼리 돕고 사는 건 맞지만 니도 묵고 살기 힘든기 말라꼬 돈까지 써가며 고아원 봉사하노 이 말이지!"
"헹님은 모르는 소리 하지 마이소! 고 아들 얼굴 보면 월급 다 털어서라도 뭐 멕이고 입혀주고 싶다 아잉교. 헹님도 언제 내 댕기는 고아원에 같이 함 가이시더. 가서 보마 맘이 달라질 끼라."
"야, 치워라. 내도 고아원에 계속 안 댕기나. 원장하고 선생하고 전부 다 도둑놈들이더구만!"
"아따. 진짜로 세상 와 자꾸 고래 빼딱하게 보는교? 우리 원장하고 선생님들은 안 그렇구마!"
"안 그렇긴 뭐가 안 그렇노? 다 똑같다 아이가. 치워라 고마!"
"진짜 속고만 살았나. 안 그렇다 안 카는교! 그라고 내가 뭐 원장이나 선생보고 가능교? 그 아들이 차마다 안 카능교! 헴도 가들 보마 그런 소리 입 밖에도 안 나올끼구마! 그 카미 우예 민중이 어떻고 저떻고 카능교?"
"마, 됐대이. 그만하고 근데 니 뭐땜에 오늘 내 보자 캤노?"
"아, 그거 말인교? 방금 한 기랑 비슷한 말인데.... 헹님은 진짜 아들이나 할매들이 파는 껌값이 뒤에 깡패들한테 다 뺏긴다고 생각하능교?"
"야, 방송에서 안 카드나. 그라고 내가 전에 시내서 껄렁하게 댕길 때도 그런 거 마이 봤다 아이가. 앵벌이 친다 안 카나, 그거 보고."
"아, 진짜로 그런 나쁜 놈들이 있능교?"
"그래!"
"그러마 그렇다 칩시다. 그래도 우리가 안 팔아주면 가들 그 돈도 못 벌면 뭐하고 묵고 사능교?"
"공장같은 데 가서 일하마 안 되나! 아이마 고아원으로 돌아가거나!"
"야, 이거 실망이구마. 난 그래도 헹님은 우리들을 좀 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그게 뭔 소리고?"
"헹님은 진짜 배 고파 봤능교? 고아원 댕긴다는 말이 진짠교? 진짜 가들 사는 거 몰라서 카능교? 난 가들이 깡패 양아치 새끼한테 돈 다 뺏긴다 캐도 내 눈에 비마 사 줄 거구마! 당장에 그것마저 안 팔아주마 가들 우예 되능교? 열나게 터지거나 밥 쫄쫄 굶을 거 아잉교? 또, 가들이 어디 도망친다고 되겠능교? 그러이 그걸 알고도 당장에 팔아줘야 하는 거 아잉교?"

그 날 난 그 녀석에게 호되게 배웠다. 하지만 정작 그 날 술자리에서의 분위기는 정반대였다. 되레 내가 그 녀석더러 '그건 아니다. 니 생각이 틀렸다. 우리가 자꾸 그렇게 팔아주니까 그렇게 등쳐 먹는 놈들이 더 생기는 거다. 그러니까 당장엔 가슴 아프더라도 우리가 사주지 말아야 한다!'고 말해줬다. 사실 말빨로 하면 가방 끈이 자기보다 훨씬 긴 나를 그 친구가 이길 리 없다. 그렇지만 난 그 말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아니다. 당장 굶는 그 사람들은 우얄끼고? 세상 바꿀 때까지 굶어죽도록 내버려둘까?' 하며 녀석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아무튼 그렇게 그 날 밤 술자리는 무르익어갔다.

"헹님요! 내가 가들 학용품 사 주고, 물 거 사주고, 놀아주는 게 얼마나 가들한테는 힘이 되는지 아능교? 없는 놈은 없는 놈끼리 사는 게 맞는 기라요!"

그래, 맞다! 마흔 중반이 되도록 이 세상 살아보니 어차피 세상은 끼리끼리 모여 살더라. 운동하는 사람은 운동하는 사람들끼리, 정치하는 사람은 정치하는 사람끼리, 돈 잘 버는 사람은 돈 잘 버는 사람끼리,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끼리 모여 살게 돼 있더라! 그 녀석은 이십대 초반에 그걸 아는데 난 아직도 왜 이런지 몰라!

더 이상 잔머리 굴리지 말고 돌아서기로 했다. 마침 그 할머니가 껌을 파는 걸 포기하고 발걸음을 무겁게 옮긴다. 얼른 뛰어갔다.

"할매요, 이거 얼만교?"
"천 원요!"
"하나 주이소!"
"하이고, 아저씨,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칠십은 더 돼 보이는 할머니가 연신 허리를 굽히며 고맙다고 인사한다. 정말 미안하고 송구스럽다. 이런 분이 파는 천 원 짜리 껌 하나 제대로 팔아주지 못하는 위선자라니!

아무튼 그 날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이번에는 신호등 횡단보도에서 육십쯤 돼 보이는 젊은 할매가 구걸을 하고 있다. 허리는 굽었고, 얼굴은 입이 돌아갔고, 눈은 한 쪽이 거의 감긴 상태다. 언뜻 봐도 몸이 정상이 아니고 정신지체가 있어 보인다. 게다가 말도 잘 못하고 어물어물거린다. 심지어 아까 할머니와는 달리 냄새도 심하다. 사람들이 다 피한다. 나도 마찬가지! 그러나 아침에 그런 일이 있은 터라 신호가 바뀌어도 건너지 못하고 있다. 결국 다음 신호가 바뀔 때쯤 그 할머니 손에 천 원 짜리 한 장 쥐어주고 얼른 떠났다. 혹시 붙잡힐까 두려워하며.... 그 때 뒤에서 들리는 소리...  '고마우이....유우..' 대충 고맙다는 뜻이겠지... 그래 횡단보도를 다 건너는데 나도 모르게 화가 치밀고, 서글픔이 몰려 온다.

우리 사회는 대체 언제가 되어야 저런 분들이 사라질까? 과연 굶주림의 문제, 가난의 문제는 사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란 말인가? 오늘도 아침 뉴스에는 '부자들이 금융으로 몰려 금융고소득자가 불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부쩍 늘었다.'고 하는데 왜 우리 둘레에는 여전히 삶에 쪼달려, 돈에 쪼달려, 빚에 쪼달려 목숨을 끊는 이의 소식이 끊기지 않는단 말인가?

오늘 오후부터는 온 나라에 눈비가 내린단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구걸을 하러 나서야 하는 그 분들에게 저 눈비가 제발 방해가 되지 않기를 기도하는 것 뿐이다. 그래서 너무 슬픈 날이다!

2006년 2월 28일 낮 12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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